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에 오랜만에 이 책을 꺼내들었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 않아 아직 관람에 대한 의지는 없는 상태다.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나 만화를 소재로한 영화가 역시 재미있었던 기억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한 소설 특유의 느낌, 특히 내 스스로 그려낸 등장인물들의 외모와 성격을 영화에서 발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무튼 김영하씨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소설의 장점은 크게 두가지다.
일단 책이 작고 가볍다. 출퇴근길에 사용하는 숄더백속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고 어깨에 무리도 가지 않는다. 책을 펼치면 널찍한 행간이 독서의 부담감을 줄여준다. 페이지 안에 글자수는 이래도 괜찮은건가 싶을정도로 적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무섭도록 빨려들어가는 흡입력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당혹스러움.
이야기의 소재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년의 연쇄살인범, 김병수
그의 의붓딸, 김은희
그리고 그들을 위협하는 또다른 연쇄살인범, 박주태
주인공은 어떤 특별한 사건을 계기로 살인에 대한 충동을 잃고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나이든 그에게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찾아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직 온전한 기억이 조금이나마 살아있을때 그는 계속해서 글을 쓰고 녹음을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러던 그가 우연히 박주태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그의 직감은 박주태가 그와 같은 부류라는 것을 말해주고 박주태는 그와 그의 딸 주위를 맴돌며 그들을 서서히 조여든다. 기억을 잃어가는 주이공이 박주태의 존재를 잊지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박주태의 존재에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주인공의 기억에 의존해 흘러간다. 그래서 때로는 과정을 건너뛰기도 하고 기억이 명확하지 않기도 하다. 메멘토'라는 영화와 유사한 느낌이 있지만 메멘토'와 달리 시간의 순서를 역행하지는 않는다.
이야기는 무섭도록 잘 읽힌다.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는 책을 읽는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알츠하이머에 걸리 연쇄살인범의 삶을 대하는 철학에 매료되기도 하지만 그 특유의 짧은 어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의 마지막에 도달해있다. 그리고 무섭도록 달려온 이야기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혼란과 당혹감이다.
별로 읽는 사람이 없을 서평이지만(ㅜㅜ) 스포는 하고 싶지 않아 자세히 적지는 않겠다.
(너무나 친절한)(이야기보다 더 자세한)문학평론가 권희철씨의 해설을 읽으면 내가 느끼는 당혹감의 정체에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고.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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