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기막힌 이야기 기막힌 글쓰기
최수묵
기업 인사팀에 근무하는 지인이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하는 보고서작성법 교육을 준비하고 있었다. 책 몇권을 들고와 내 앞에 깔아놓고는 자기 볼일을 보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한권 집어든 것이 바로 최수묵씨의 이야기였다. 아주 잠깐 앞장의 몇페이지를 읽어보고는 한권 구입해서 제대로 읽어봐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만큼 읽기도 쉽고 내용도 흥미로워 보였다.
책의 제목 앞에는 '퓰리처상 작가들에게 배우는 놀라운 글쓰기의 비밀'이라는 그럴싸한 광고문구가 적혀있다. 책을 읽고나서 드는 생각은 그 문구가 작가에 의해 쓰이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이다. 왜냐하면 책 어디를 보아도 그런 비밀은 쓰여있지 않았을 뿐더러 그런 비밀은 없다고까지 발칙하게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에는 글쓰기 방법론이라기 보다는 네러티브라는 글쓰기 기법에 대한 소개와 약간의 스킬정도만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그 객체도 기자라는 작가의 직업특성에 따라 기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칫 기사라는 특수성에 질려 책을 덮어 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어쨌든 책 자체는 흥미롭고 가독성도 매우 좋았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 내가 얻어낸 것은 처음의 목적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었다. 바로 '글쓰기'가 아닌 '글읽기'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인용하는 예시들은 신문이나 인터넷 기사가 대부분이다. 내가 아침마다 네이버뉴스에서 보아온 수많은 가십과 기사들..
평소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던 이 수많은 소식들의 제목이 어떻게 정해지고 또 어떻게 내용을 엮어가는지에 대해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말처럼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인 읽기를 위해 쓰기를 배울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매우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덧.
최근 중고등학교 시절에 읽던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뉴스거리로 나라 전체가 들썩이고 있고(이미 한번은 크게 들썩였고;;) 그 어느때보다 많은 시간을 뉴스를 보는데 사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느낀 사실은 두가지다. 첫째는 그동안 뉴스나 신문기사에 너무 관심이 없었구나. 두번째는 뉴스가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내용이 부실해서 관심이 없었구나.
객관적 사실을 전해야 하는 뉴스가 보도주체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진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었다. 눈쌀을 찌푸리게 만드는 소식이 대부분이라 일부러 피했던 경향도 있거니와 사실 좀 어려웠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정보들 속에서 기자들은 공을 들여 의미를 파악해내고 그것을 글과 영상으로 옮겨낸다. 이야기는 공익을, 그리고 때로는 누군가의 사익을 위해 감춰지고 재가공되어 진다. 그 속에서 다시 객관성을 확인하고 숨은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오로지 독자(평범한 시민)의 몫이지 싶다. 그동안 너무 많이 게을렀던 것 같다.
"관계기관, 검찰, 정부 등과 같이 추상적인 존재들이 바로 투명인간들인데, 언론이 원하는 '판에 박힌 코멘트'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물론이고 독자가 본받을 만한 '성격'도 없으며 단지 '임대용 직책'과 '인용을 위한 권위'만 갖고 있을 뿐이다. 허울뿐인 투명인간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p.54
"①E대통령은 오늘 전방부대를 방문, 장병들과 축구경기를 벌였다. ②E대통령(68)은 오늘 전방부대를 방문해 장병들과 40분간 축구경기를 벌였다. ③E대통령은 오늘 전방부대를 방문, 장병들과 전후방 40분간 축구경기를 벌였다. 그는 2개월 후면 68세 생일을 맞는다."
-p.96
"문제는 '의견'과 '의미'를 구별하지 못할 때 생긴다. 모든 사건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는 법인데, 이 의미를 의견과 혼동해 의미 자체를 전달하지 않게 되면 더 큰 문제를 낳는다. 이야기의 의미를 발굴해 독자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은 언론의 당연한 역할인데,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책임 방기가 된다."
-p.265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 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0) | 2017.08.10 |
---|---|
[서평]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 - 이지성, 정회일 (0) | 2017.08.10 |
[서평]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채사장 (0) | 2017.08.10 |
[서평] 피터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 피터드러커 (0) | 2017.08.08 |
[서평] 서른살 직장인 책읽기를 배우다 - 구본준, 김미영 (0) | 2017.07.30 |
댓글